‘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여전히 국회 계류 중
발전소 이어 재생E 발전도 대규모·지방중심으로 설치
용량만 늘리는 현 방식 탈피, 수요자 중심 보급 앞장서야

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전기신문 정재원 기자] 대한민국은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제다. 먼 거리에 있는 지방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소비지역으로 보낸다. 당진, 태안, 보령 등 충청남도 지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경상도 해안가에는 고리, 월성 등 원자력발전소가 전기 생산을 위한 대규모 시설이다. 갈수록 증가하는 수도권의 전기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지방 곳곳에 발전소가 세워지고 있다.
과거 대규모 발전단지는 발전과 비용면에서 모두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낮은 전기요금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최근 기후위기와 주민수용성 등으로 과거와 같은 중앙집중형 발전방식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방 주민들은 발전소 건설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며 에너지마저도 지역 불평등을 보인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방에 몰린 발전소…전력자립도 충남 235.4% VS 서울 3.9%
실제로 국내 지역별 발전량에서 지방과 도시의 차이는 크다. 2020년 지역별 발전설비 용량은 충남 2만5164MW, 경북 1만4354MW 순이었으나 정작 가장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서울은 946MW에 불과했다. 발전량 또한 충남은 1억1410만3936MWh에 달했지만 서울은 51만2176MWh에 불과했다.
광역도시별 전력수급 및 전력자립도 또한 충남과 서울의 차이는 심각하다. 한전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의 전력자립도는 235.4%에 달했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전기보다 2배 이상 많은 양을 생산해 다른 지역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수도 서울은 3.9%에 불과했다.
이러한 지역별 발전과 소비 패턴 때문에 수만 볼트의 고압전기가 흘러 위험한 송전탑 또한 지방에 중심적으로 설치돼있다.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노원병)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지자체별, 전압별 송전탑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 충청남도의 송전탑은 4165개, 강원도는 5129개, 전라남도는 4602개였다. 반면 서울은 183개로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지방 주민 “일방적 희생”, 갈등 커지는 중앙집중식 발전
결국 지방 주민들은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며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횡성군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지난 8월 한전이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경과 대역을 횡성지역에 추가하자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한전이 입지를 선정하면서 환경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산사태 위험 지역 배제 기준까지 무시했다는 것이다. 창원 시민들도 ‘청량산 송전탑·고운초 앞 고압지중선 반대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월영동 송전선로 증설사업 반대에 나섰다. 강릉 왕산면을 비롯해 부산 기장 상곡마을, 충주 주덕읍·대소원면·신니면 등 전국 각지에서도 주민들의 송전탑 및 송전선로 건설 공사 반대 시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방 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피폭을 주장하거나 석탄재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며 발전소 증설을 반대하는 일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처럼 지방의 전기를 도시에 보내기 위한 과정에서 국민적 갈등은 점차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발전소와 송변전선로를 구축하는 데에 과거보다 상당한 기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등 국가적 손실이 늘어가고 있다.
◆정부 분산에너지 추진 방식엔 한계, 주민수용성 해결돼야
정부가 분산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중앙집중형 발전방식을 탈피해 재생에너지와 집단에너지, ESS와 가상발전소 등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고 사용하는’ 분산형 발전방식을 통해 에너지대전환과 탄소중립을 함께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지난 2019년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올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을 내놓으며 분산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제 분산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추진전략의 근거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조차 주민 설득이 어려워 여전히 대규모 발전 방식으로 지방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태양광이 많이 설치된 전남 신안 등에는 오히려 출력제한 등이 일어나며 계통 안정화마저 방해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한전이 지난 9월 수립한 ‘9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안’을 살펴보면 ‘수요 중심지와 재생e 공급지역의 불일치로 지역 간 전력융통 및 송전망 수용을 위해 송변전설비 확충이 지속 요구됨’이라고 나와 있다. 재생에너지조차도 지방을 중심으로 설치돼 여전히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가 필요하는 등 분산전원 활성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에너지대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해 분산에너지를 확대한다고 했지만 지금의 추진 방식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다”며 “당장 용량만 늘리는 보급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분산에너지의 기존 취지대로 수요지 중심 보급에 앞장서서 주민 수용성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협동조합으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성공한 독일과 덴마크
결국 분산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주민수용성 문제를 해결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미 에너지대전환을 겪은 선진국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와 같은 중앙집중형 발전방식을 겪었던 선진국들은 이미 협동조합 등을 통한 시민주도형 모델로 주민수용성을 높여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다.
적극적인 에너지전환정책으로 분산에너지 구조로 변신 중인독일은 ‘시민 주도형’이 특징이다. 시민이 직접 협동조합을 통해 전력생산설비를 설치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주민수용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2018년 기준으로 에너지협동조합만 무려 869개에 달하며 조합원만 18만3000여명이다. 2017년까지 설치한 재생에너지 설비도 1GW에 달한다. 이러한 높은 주민수용성으로 전력을 자급자족하는 마을도 나타났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은 풍력과 태양광을 통해 가정과 기업이 전기를 공급받는다. 남은 전기는 베를린 등에 판매하고 수익은 주민 편의시설 등에 사용돼 주민들의 혜택이 크다.
덴마크는 분산에너지가 가장 잘 정착한 나라로 꼽힌다. 우리와 같은 중앙집중형 발전국가였던 덴마크는 현재 전력의 70% 이상을 재생에너지가 책임지고 있다. 과거 에너지 99%를 석탄, 석유 등 외국에서 수입하던 덴마크는 에너지 안보의 취약함을 느끼고 에너지원 다양화 등 에너지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시민 소유 풍력발전소를 건설한다. 발전소 건설 시에는 주민 공청회를 열어서 지역 주민들이 사업 결정에 의견을 제출하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풍력 발전설비의 약 40%가 지역 풍력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분산에너지원중 하나인 열병합발전 비중도 EU 28개국 중 39.4%로 가장 높으며 전체 난방의 65%가 분산형 지역난방이다.
◆국내서도 ‘에너지협동조합’…57곳까지 증가
유럽의 분산에너지 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결국 높은 주민 수용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수익 분배 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적지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분산에너지화를 적극 실현하려는 단체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2년 설립된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시민이 출자한 시민 주도형 태양광발전소 건립 조합으로 에너지전환 수익을 시민들과 나누며 조합원의 친환경적 가치관을 키워 ‘에너지자립도시’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국내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 가운데 사업 규모가 가장 크며 발전소 24곳에서 연간 3299MW 전기를 생산한다. 이는 1000가구가 1년간 사용하는 양이다. 개인출자 또는 법인출자 등 시민이 누구나 가입해 1년 평균 약 5% 수익률을 기록한다. 이러한 장점으로 지난 2012년 시작된 전국 시민참여 에너지협동조합수는 서울 15곳을 비롯해 57곳까지 늘어났다.
이창수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상임이사 겸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전국의 수많은 발전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에너지 자급까지 가능하게 해 국가경제에 보탬이 된다”며 “이러한 효과로 에너지 협동조합에 관한 인식이 안산 시민과 독일 시민들 사이의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태양광발전소의 효율은 지금도 올라가고 있고 유휴부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자급률을 60%까지 올릴 수 있다”며 “지방정부에서도 최근 들어 분산에너지의 효과를 인정하고 부지 대여 등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통해 주민 수용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신문,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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